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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와 이스핀

by. 서진 @3_rojoroco

막시민은 여느 때 처럼 적당히 햇볕들고 적당히 얼굴이 그늘진 자리를 찾아 포도원 후원 벤치에 드러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낮잠을 자는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사실 막시민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이게 다 진짜로 네냐플에 입학해버린 이스핀 샤를 때문이다. 그 녀석은 못써먹을 조그만 장난감 권총이 대체 뭐길래,

오스틀리 교수가 내어놓을 때 까지 네냐플에 붙어있겠다고 선언한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가명이 분명한 이름인 이스핀 샤를 그대로 입학을 한 것도 수상했다. 교수들이 무슨 생각인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 교수들이 입학 허가만 안내줬어도! 적어도 이스핀이 입학 시험에서 떨어지기만 했더라도!

 

 "막시민 선배! 선배~ 여기 있는거 다 알아요?"


 저벅저벅, 풀을 밟는 발소리가 근처로 다가오고 있어 막시민은 몸에 힘을 빼고 완전히 잠든 척 하기 시작했다.

숨도 부러 느리게 쉬었다. 이 정도면 누구나 잔다고 착각할 터였다.

막시민은 제발 저 이가 자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가버리길 기도하며 연기를 계속했다.

막시민의 오판은 이스핀 샤를에게도 이게 먹힐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선배! 찾았다. 아~ 뭐야~ 자는 척 해요 지금? 일어나봐요. 얼른. 할말 있다니까?"

 "끄억!"


 막시민은 결단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방금 찔린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살가죽이 뚫린 것 같이 찡했다.

진짜로 자고 있었다고 해도 단번에 깼을 정도인데? 여태껏 옆구리는 많이 찔려봤지만 그것도 티치엘이나 루시안같이 여리여리한 애들 정도고, 힘 깨나 쓰는 보리스는 점잖은 숯가마 아니랄까봐 점잖게 막시민을 흔들어 깨우는 편이었다.

조슈아는 제 손가락질 가지곤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놈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강렬한 찌르기는 처음이란 소리였다.

아니, 진짜 멍든거 아냐? 막시민은 옆구리를 붙잡고 웅크린 채 일어나질 못했다. 그러자 등에 조심스레 온기가 얹어졌다.

 

 "아, 많이 아팠어요? 나는 자는 거 깨우려고 그랬지. 괜찮아요?"

 안 자는거 알면서도 있는 힘껏 옆구리를 찌른사람 치고는 말이 다정했다. 머리끝까지 뻗친 열이 명치까지 순식간에 내려갔다.

 "이게...네 눈엔....괜찮아 보여...?"

 "아, 미안하대도? 싹싹 빌게 내가. 무릎 꿇고 빌면 돼?"

 "됐어, 무릎은 무슨. 일어나."

 "...."

 "..."

 

 한동안 침묵이 오갔다. 막시민은 화내려던 게 무릎꿇은 이스핀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가라앉아 어이가 없어서였고, 
이스핀은 아무리 일부러였다지만 막시민이 정말로 아파보여서 민망해진 탓이었다. 
둘은 같은 벤치에 앉아서 풀잎이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나, 사람 몇몇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뭐가요?"

 "할 말 있다면서."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건 막시민이었다. 할 말이 있다고 찾아온 건 이스핀이었는데도 그랬다.

 "선배 많이 화났나 해서. 아까 티치엘 선배님이 엄청 뭐라고 했잖아요."

 "그건...네가 티치엘한테 일렀...! 하, 아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왔지. 나는 장난으로 한건데."

 "그래."

 "선배, 진짜 화 안났어?"

 "안났다니까?"


 그러자 이스핀은 웅크린 막시민의 옆구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근데 왜 내 얼굴을 안봐? 진짜 많이 아파? 멍들었는지 좀 봐줘?"

 "보긴 뭘 봐준다고 그래!"

 "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너, 너는! 진짜! 외간남자 몸을 본다는 소릴 함부로 하고!"

 "뭐? 하! 차! 내,내가 어이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선 둘 다 시뻘개진 얼굴로 소리소리를 치는 모습을 지나가던 조슈아가 멀리서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이야~ 저기 노을이 졌네."

 "노을? 조슈아, 뭐 이상한 거 봤어? 지금은 3시밖에 안됐는데?"

 "루시안, 그거 아냐."

 


 "자! 화해! 화해하자! 악수!"

 "너는 무슨 화해를 이렇게 막무가내로..."

 "손 안잡아?"

 "잡아, 잡는다고."

 


 "와, 저기 둘이 손 잡았어."

 "좋을 때다."

 보리스의 말에 조슈아가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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