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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냐플의 신입생

by. 무지개행운 @NW2iPTBiNNPcLuJ

“너, 네냐플 신입생이라고 하지 않았냐?”

 

당돌하게 자신을 네냐플에 들어올 신입생이라고 소개하던 귀여운 예비 후배는 정말 막시민의 후배가 되어서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것도 수석 입학이라나 뭐라나.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핏줄에, 능력에, 체력에, 연기력까지 모두 완벽하다고.

 

“대체 네가 내 옆에 왜 있는 거냐?”

 

막시민의 구원주이자 네냐플의 천사인 티치엘이 그동안 막시민을 전담해서 얼래면서 가르치고 수업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줬었지만,

포도원에서 새로 발견된 고대 마법으로 카르디와 조슈아, 티치엘은 쥬스피앙의 거처로 돌아가게 되었다.

당연히 기약 없는 휴학을 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카프리치오를 종종 노리던 부녀가 다른 일에 마음을 뺏겨 집착 같았던 연락도 뜸하고 얼굴 보기도 힘들어진 일은 간만에 누릴 수 있는 달콤한 휴식이었지만, 길지 않았다. 총명해보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다니면서 막시민의 말에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친구가 그의 곁에 나타났다.

 

“보면 모르겠어? 선배가 너무 뒤처지고 부족하고 모잘라서 신입생 수석인 내가 특별히 도와주려고 요렇게 옆 자리에 착 붙어가지고 있는 거야.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 나도 봉사하는 기분으로 하는 거라서 큰 부담은 없어.”

 

“티치엘, 쥬스피앙에 이어서 이번엔 너냐?”

 

고깝다는 표정으로 이스핀을 바라보지만 이스핀은 생글생글 잘 웃기만 했다. 티치엘이나 조슈아는 여린 면이라도 있지,

얘는 능구렁이 100마리는 삶아 먹는 것 같다. 대체 뭐야.

 

그러나 막시민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수업을 들은 적이 없는데... 막시민은 ‘똑똑하다’라고는 전혀 할 수는 없었지만

타고난 임기응변과 상황판단력, 추리력, 그리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철저한 실용주의적 결과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오곤 했기에 ‘멍청하지만 일 처리는 잘 한다’는 평을 듣곤 했다.

그러니 그에게는 수업이란 게 의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배워서 바로바로 써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기껏해야 시험이라고 해서 종이에 검은 글자 몇 줄 끄적이기 위해서 이토록 머리를 굴려야 한다는 게 귀찮았다.

인생에는 이보다 아름다운 게 많은데, 아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오래된 지식을 중얼거리면서 받아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카프리치오 때문에, 쥬스피앙 덕분에, 이번 학기에 마법 관련 수업만 잔뜩 듣게 된 막시민은

새학기 수업부터 지루해 하품을 하고 낙서를 하고 뜬눈으로 졸기 등 할 수 있는 잡다한 재주를 부려봤다.

그런 막시민에게 수업이 끝난 이후 친절하게 과외를 해주는 상냥한 티치엘이 아니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손등을 꼬집는 이스핀이 있었다.

 

이스핀은 모든 게 흥미로웠다. 검술과 정치학, 역사학, 논리학이라면 배운 바가 있지만 네냐플에서만 배울 수 있는 특별한 마법이 좋았다. 어쩌면 프시키와 더 멋진 소통을 할 수도 있겠고. 오토마톤의 행방을 알 수도 있겠고. 오빠 베르나르를 추적할 수 있으면 더할 바가 없었다.

개강 첫 날이라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과 기본기만 하고 수업은 끝이 났다.

본격적인 진도는 다음 수업 부터였다. 막시민은 이스핀의 뒷통수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얘는 언제까지 날 따라다닐 작정이지?’

 

빚진 것도 받을 것도 없다면 빨리 떼버리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그 때의 대화가 잊혀지지 않았다.

입학하기 전 술집에서 들었던 말.

 

“다른 사람들이 선배를 갱생시키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선배를 너무 사랑한거야.

그러니까 죽도밥도 안 되는 거지. 사람은 사랑으로만 성장하는 게 아니거든. 채찍도 있어야지.”

 

자기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밝히지 않았던 겁쟁이 주제에, 사람을 돈으로만 매수하려던 주제에 다른 사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정작 겁이 많아서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 너야. 돈 보고 움직이는 사람은 언젠가 네 뒷통수를 쳐서 더 많은 금화를 얻어내기 마련이야. 넌 금화 빼고는 네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군?”

그러자마자 프시키를 불러내서 술집의 손님과 네냐플의 교수들을 경악시켰지. 한 동안 유명세를 탔었고. 뻔뻔하게 입학까지.

 

“뭐 이런 게 다 있어...”

“응? 뭐?”

 

이스핀이 뒤를 돌아서 막시민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흠칫 놀랐다.

 

“아니, 보아하니 앞날이 창창한 신입생이 나한테 나올 게 뭐가 있다고 귀한 시간을 쓰십니까. 그냥 자기 할 일 하시지요.”

 

이스핀과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얼굴들이 있었다.

 

“다 재미없어. 선배가 필요해. 선배 아니면 누구한테 추리를 부탁하겠어? 난 선배 능력 믿어.”

“믿지 마라. 나도 나 안 믿는다.”

“상관없어. 내가 믿어. 선배 특출나. 같이 찾아줄 거지, 권총?”

귀엽게 혀를 내밀며 웃는데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은데, 좋아서 당황스러웠다.

짜증이 나는데 짜증을 낼 수가 없었다. 이 감정은 뭐람.

“선배 아니면 안 된다고.”

이스핀이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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